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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|중앙일보 창간 14돌 기념 특별기획 의식조사를 읽고|최선영(시인·고려대 강사)

    중앙일보의 연재 『재미한국인들』-그들의 생활과 생각-을 흥미있게 읽었다. 2천1백92명의 재미교포를 상대로 한 실태조사의 결과는 미국을 가보지 못한 이들에게, 혹은 앞으로 이민을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0.13 00:00

  • 북간도의 한국인|재미교포 한태경씨, 「연변조선족자치주」를 가다|본지독점연재

    중공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무래도 문화혁명과 4인조에 대한 비판의 소리였다. 여행사 안내원은 물론 각급학교 교장·관리등 모든 사람들이 문화혁명때문에 발전이 늦어

    중앙일보

    1979.02.19 00:00

  • 남기고싶은 이야기들 「미국의소리」

    「뉴욕」에 있던 미국의 소리 방송국은 54년10월「워싱턴」 시내「인디펜던스」가의 보건·교육·후생생(HEW) 건물로 옮겨갔다. VOA의「워싱턴」시대가 시작됐는데 창설된지 12년이 지

    중앙일보

    1978.10.26 00:00

  • 「하와이」이민 75년 재미교포의 명함(하)|로스앤젤레스

    사탕수수밭 막일꾼으로 한국인이 처음 「하와이」땅에 발을 디딘지 75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에 사는 한국교포들은 28만여명에 이르고 있다. 이름 있는 대도시는 물론이고 「괌」도나 「푸

    중앙일보

    1978.01.21 00:00

  • 내한한 한국의 연인 미 시애틀의 파파와 마마|19년간 유학생·도미장병 뒷바라지 출영 나온「아들·딸」과 반가운 해후|돌봐준 한인 중엔 오원 등 저명인사도

    『지금은 우리부부 생애에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.』 25일 상오8시 KAL편 내한한 미국 서북부 한국인의 은인 「어니스트·G·드허티」씨(78)부부를 출영 나온 30여명의 한국인 아

    중앙일보

    1976.09.27 00:00

  • (1614)제50화 외국유학시절(속)

    1923년 가을 일본 황태자의 결혼식에 투탄할 계획이 폭탄을 입수하지 못하고 또 대지진으로 박렬씨가 검거되는 바람에 이 사건은 계획으로서만 그쳤지만 이들의 법정투쟁은 강한 의지와

    중앙일보

    1976.04.17 00:00

  • (17) 재독 산림학자 고영주 박사 (끝)

    막상 결혼은 했으나 고 박사 부부는 신혼의 아기자기한 단꿈을 흠뻑 맛보지 못했다. 곧바로 집을 구해 한집에 살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. 아직 공부하는 처지에 함께 생활한다는

    중앙일보

    1974.12.26 00:00

  • (1165)|국립경찰 창설(3)|김태선

    해방이 된 8월15일부터 미군이 진주한 9월9일까지 24일간의 치안 공백기간에 국내에는 동 단위로 조직된 청년단체나 야경 원·치안대 등 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 저마다 치안을 받는

    중앙일보

    1974.10.16 00:00

  • (51)|일본 육사출신 김일성 장군|

    전회에서 「김일성 장군」이 단천 출신이라는 전설의 정체를 밝혀 김일성 장군으로 불린 사람이 있었음을 알았다. 한편 일본 육사 출신설은 단천 출신설 보다 더 널리 펴져 있었는데 단천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8.29 00:00

  • (52)-제9화 고균 김옥균의 유랑 행적기(끝)

    1884년 12월, 구주 「나가사끼」에 망명의 첫발을 디딘 후 거의 2년 간격으로 「도오꾜」주변, 소립원·북해도 등을 유랑해 온 김옥균은 북해도 유배에서 풀려 다시「도오꾜」로 돌아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2.22 00:00

  • (39)제9화 고균 김옥균의 유랑행적기(1) 제2장 일본 속에 맺힌 한인들의 원한

    김옥균(자=백온·호=고우·별호=고균)이 일본에 들른 것은 도합 네 차례. 첫 번째는 1881년12월 31세 때. 그는 단순한 시찰목적으로 홀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반년만에 돌아왔다

    중앙일보

    1973.12.14 00:00

  • 살아있는 「미국이민 70년」 9순 할아버지 모국방문

    「샌프런시스코」교민들의 할아버지 양주은옹 (94·고향개성) 이 이민70년만에 두번째로 17일 모국을 다니러 왔다. 양은「샌프런시스코」교민 가운데 최고령이고 전미를 통를어 「로스앤젤

    중앙일보

    1973.05.23 00:00

  • 호주 속의 한국인

    호주는 우리 남북한의 35배나 되는 넓은 면적에 비해 인구는 1천3백만명이 못된다. 아직 2백년이 안된 짧은 개척의 역사이외에 유색인종의 유입을 철저하게 막아온 호주의 이른바 「백

    중앙일보

    1973.05.22 00:00

  • 「파리」대학촌에 세우려던『한국 관』건립 계획 좌절

    【파리=주섭일 특파원】「파리」의 대학촌에 한국 관을 세운다는 꿈이 깨어졌다.「프랑스」유학생들뿐만 아니라 여행자들까지의 오랜 숙원이던 한국간 건물을 실현에 옮기기 위해 재불 한인 회

    중앙일보

    1973.05.14 00:00

  • 하와이 이민 70년(1)

    1903년 1월13일- 1백1명의 한국인들이 호놀룰루에 발을 디딘 날이다. 73년은 한국인이 하와이로 이민간지 70주년이 되는 셈이다. 1902년12월22일, 신천지에 뜻을 둔 첫

    중앙일보

    1973.01.06 00:00

  • (530)-제자 윤석오|내가 아는 이 박사 경무대 사계(157)

    내가 「하와이」를 떠난 것은 모국 형님들로부터의 학업재촉 때문이었다. 나에게 편지를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자 이 박사에게 직접 부탁한 것 갈다. 윤치호씨나 윤치소씨(윤보선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8.08 00:00

  • 발군의 영어 실력 보인 뉴질랜드 한인 유학생

    「콜롬보·플랜」이 장학금으로 이곳 「뉴질랜드」의 수도 「웰링턴」의 유일한 「빅토리아」 대학에서 수학중인 8명의 한국인 영어 교사들의 영문법 실력이 뛰어나 「빅토리아」 대학 영어 교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6.22 00:00

  • 「재독 한국문화원」개원|서 베를린 소재 초대회장 정하은씨

    「재독 한국문화원」이 30일 서 「베를린」에서 개원한다. 독일의 최대 교단인 독일 복음교단이 동서양문화교류의 중추역할을 기대하여 설립한 것이다. 초대 원장에는 정하은 박사(45·신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1.28 00:00

  • 낭산 김준연 선생의 서거를 애도함

    낭산 김준연 선생이 서거하셨다. 어떤 의미에서 「한 시대」를 대표하던 거인이 이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.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지만 낭산 선생의 경우는 그 만년에 있어

    중앙일보

    1972.01.05 00:00

  • 「한국문고」책 수집 위해 귀국

    미국에 있는 7천 한국 유학생과 20만 교포들의 오랜 숙원이던 「한국문고」가 조그마한 도서실 형태로 지난 6월 11일「워싱턴」에서 개관했다. 이 문고사업을 처음부터 주관했던 재미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6.25 00:00

  • 역광선

    대법원 2개 법률에 위헌판결. 대법원 뭣 하는 덴지 이제야 알게 됐다. IMF사절단 오늘 이한. 이번 홍역도 치르긴 치렀지만, 후유증이 걱정. 보리쌀값 20%인상 왈가왈부. 물가가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6.23 00:00

  • (7)구주|현장취재…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|「스웨덴」서 존경받는 교포사회

    심장 이식을 하든 조그만 부스럼을 떼어 내든 수술비는 1「달러」 40「센트」로 통일 되어있는 나라. 미국을 앞지르는 국민소득과『요람에서 무덤까지』를 감싸준다는 완벽한 사회보장제도의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4.19 00:00

  • "내나라 위해 싸운 것 뿐"|포상신청 거절해온 북만주투사 최석호용

    『제 손으로 자기 자랑하는 법이 아니라』는 대쪽같은 성품 때문에 두메산골에 파묻혀 지내온 북만 독립투사 최석호옹 (77) 이 독립유공자의 포상대열에서 소외당한 채 광복 25주년을

    중앙일보

    1970.08.15 00:00

  • 또하나 거목이 쓰러지다

    나라의 큰기둥이 또하나쓰러졌습니다. 불의에 용감했고 사악에 직언하는 거목이 사라졌읍니다. 정계의 원로이자 국민의지도자인 창낭의운명은 이나라의 큰 손실입니다. 이나라 정치는 당신의

    중앙일보

    1969.08.02 00:00